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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산책] 가을(秋)

디지털뉴스팀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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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가을철 귀뚜라미의 형상으로 계절을 표현하던 이 글자는, 주(周)나라 선왕 때 태사(太史)였던 '사주(史籒)'가 만든 한자 서체인 대전(大篆)에 이르러 벼(禾)와 불(火)이 합쳐진 ‘秋’ 자로 발전했다.
 
벼는 불처럼 뜨거운 햇살을 견디며 익어간다. 보리를 수확하는 ‘맥추(麥秋)’나 가을걷이를 뜻하는 ‘대추(大秋)’라는 말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이 시기 들녘은 황금빛 물결로 가득 차며, 가을은 비로소 결실과 수확의 계절이 된다.

중국에서는 특히 3천여 년 전 은(殷)나라 시기부터 수확기가 되면 성대한 제천(祭天) 행사인 ‘고추(告秋)’를 거행했다. 수확의 기쁨을 조상과 자연의 신에게 알리는 이 제례는 이후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왔다.

가을의 정취는  ‘추월춘풍(秋月春風, 가을 달과 봄바람)’이라는 말에 잘 담겨 있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그의 시 《비파행(琵琶行)》에서 이 아름다운 계절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今年歡笑復明年(금년환소부명년) 올해도 웃고 즐기며 또 내년을 맞이하고
秋月春風等閑度(추월춘풍등한도) 아름다운 시절(가을 달과 봄바람)을 무심히 보내었네.

이는 과거 화려한 시절을 보냈던 비파 여인이 젊은 날의 아름다운 세월을 무심히 흘려보냈음을 탄식하는 장면이다. 여기서도 '가을 달(秋月)'은 계절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시어(詩語)로 쓰였다.

‘추파(秋波)’도 가을에서 유래했다. 원래는 ‘가을의 맑은 물결’을 뜻했으나, 점차 ‘여인의 맑고 아름다운 눈동자’를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북송의 시인 소동파(蘇東坡)는 그의 시 《백보홍(百步洪)》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눈길을 돌려주지 않네(佳人未肯回秋波)’라고 읊었는데, 이는 미인이 끝내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추호(秋毫)’라는 말도 가을과 관련이 깊다. 가을철 동물의 몸에 새로 돋아난 가늘고 부드러운 털을 뜻하며, 아주 작은 사물을 비유할 때 쓰인다. 여기에서 유래한 ‘추호지말(秋毫之末)’은 가느다란 털의 끝부분을 가리키는 말로,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극도로 미세하고 섬세한 것을 뜻한다.

맹자(孟子)》에는 "시력은 가을철 짐승의 가는 털끝을 볼 만큼 밝으면서, 수레에 가득 실린 땔나무는 보지 못한다(明足以察秋毫之末 而不見輿薪)"는 구절이 있다. 이는 맹자가 제나라 선왕에게 올바른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설명하며 든 비유이다. 백성을 돌볼 능력(시력)이 충분하면서도 정작 백성을 보살피지 않는 왕의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한 대목이다.

이처럼 가을을 뜻하는 ‘秋’ 자는 풍요로운 수확의 기쁨과 미인의 맑은 눈동자, 그리고 짐승의 미세한 털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바야흐로 가을로 들어선 계절의 길목에서, 우리 삶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秋’의 고전적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


디지털뉴스팀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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