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베이징 텐안먼 6. 4 대학살이 발생한 지 이미 25주년이 지났지만, 당시 중공군의 총과 탱크를 동원한 진압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는지는 의문에 싸여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 홍콩 언론은 미국 백악관의 비밀 파일 내용에 근거해 10,454명이 살해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습니다.
홍콩 ‘1주간(壹周刊)’은 당시의 미국 백악관 기밀파일을 검색하던 중, 워싱턴 정부가 중국 계엄군 정보원을 통해 중난하이(中南海) 내부문서를 알아낸 것을 발견했으며, 그 내부문서에 따르면 6. 4 사건의 사상자는 4만명 이상이며, 그 중 10,454명이 살해됐다고 전했습니다.
보도는 또 최근 일부에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며, ‘6. 4에 사람이 죽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대해, 백악관의 이 수치가 확실한 증거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이자료에서는 진압을 담당한 중공군 제27군단이 6월 4일 새벽, 살상무기를 갖고 텐안먼 광장에서 사람들을 사살했고, 다른 부대는 이로 인해 중공군에 내분을 일으켰다고 폭로했습니다.
그 밖에, 당시 5월 20일 베이징이 계엄령을 실시하고 장쩌민 당시 상하이시 서기가 이미 덩샤오핑 당시 주석의 후계자로 발탁돼 대학살 때 그도 베이징에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1989년은 장쩌민의 정치경력 중에서 제일 관건적인 한 해였습니다. 장쩌민은 6. 4 사건의 최대 수혜자입니다. 장쩌민은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퇴직을 준비 중이던 그는 상하이시 서기에서 단번에 당, 정, 군을 장악한 최고 권력의 ‘핵심’으로 임명됐습니다.
장쩌민은 2002년 총서기와 국가주석에서 물러날 당시,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몇 가지 규칙을 정했으며, 그 중 하나를 '6.4 판결을 뒤집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6. 4 사건 이후 1년 이상 장쩌민은 6. 4 참여자, 지지 학생, 진압에 반대한 사람들을 조사, 적발, 검거했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더 이상 ‘6. 4’를 담론하지 못했습니다.
20여년이 경과한 후, 6. 4 사건의 진상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습니다. 그 내막을 잘 아는 사람에 따르면, 그 해 중공이 방송한 이른바 ‘폭도’들이 군용차를 불태우는 영상은 모두 군부가 설계하고, 자신들이 감독한 것입니다.
이 같은 은폐와 누명, 조사 과정에서 장쩌민은 선전과 폭력 기구를 모두 장악했고, 그 10여년 후 장쩌민이 사용한 기만과 모함의 낡은 수단은 ‘텐안먼 분신자살 사건’ 에서 다시 연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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