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한 해외 사이트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목숨을 걸고 독일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 만행을 처음으로 전세계에 알렸던 폴란드 대위의 이야기가 소개돼 감동과 안타까움을 주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많은 남녀노소의 유태인들이 나치의 포로 수용소로 끌려가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각종 고문과 인체실험 등으로 살해 당했습니다, 하지만 전세계는 한동안 이 끔찍한 만행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1940년 9월 19일, 독일 나치는 국내에서 폴란드 대위, 위톨드 피레키(Witold Pilecki)를 체포했고 그를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Pilecki 대위는 나치가 수용소로 끌려간 유태인들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체포된 것이었습니다.
수용소로 끌려간 대위는 그곳에서 자행되는 상상을 초월하는 참혹함과 끔찍한 실상에 매우 놀랐고 나치가 그곳에서 각종 잔인한 방법으로 유태인들을 학살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한마디로 아우슈비츠는 단순한 전쟁 포로 수용소가 아닌 유태인 도살장이었던 것입니다.
피레키 대위는 그곳의 다른 유태인들처럼 언제 어떻게 살해될지 알 수 없었을뿐 아니라, 살아서 그곳을 나갈 수 있을지를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폴란드 군에게 구조 요청을 하지 않았고 계속 그곳의 상황을 외부로 알렸습니다. 그의 활약으로 독일 나치의 만행은 대위의 활약을 통해 전세계에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만행의 내용이 너무 끔찍했기 때문에 그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피레키 대위는 수용소에서 2년 반 동안 성공적으로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외부로 알렸습니다. 1943년 4월 26일, 그는 오랫동안 준비했던 탈출 계획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한밤중에 수용소 주방의 옆문을 통해 도망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뛰면서, 감시견이 그의 냄새를 맡고 쫓아오지 못하도록 담배연기를 몸 뒤로 뿌렸습니다.
그는 무사히 탈출에 성공했고, 소속된 부대로 복귀해 아우슈비츠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폴란드 정부는 그의 보고서로 인해 엄청난 충격과 파장이 일 것을 우려해 그가 작성한 모든 자료를 전부 소각했기 때문에 그의 존재도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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