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6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다고 밝힌 데 대해 ‘중동의 화약고’를 건드렸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첨예하게 맞붙어 있는 분쟁의 중심지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예루살렘에 대해 철저한 중립을 지켜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쌍방 협의로 결정할 사안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어떤 나라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예루살렘발표 직후, 팔레스타인은 분노에 휩싸였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TV 연설에서 “(트럼프의) 이번 결정이 종교전쟁을 부추기고 팔레스타인을 끝나지 않을 전쟁으로 인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는 트럼프의 선언에 대해 “지옥의 문을 열었다”고 맹렬히 비난하고 이후 사흘간을 ‘분노의 날’로 선포하고 주민들에게 대대적인 투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팔레스타인 교육부는 이날 휴교령을 내리고 교사와 학생들에게 항의 집회에 참가할 것을 독려했다.
팔레스타인 각 지역은 분노에 찬 시위대로 넘쳐났고,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는 등 과격한 반미(反美) 시위가 이어졌다.
■ 국제사회, 트럼프 ‘예루살렘 선언’ 지탄
이번 사태로 국제사회는 트럼프에 대한 비난과 우려를 일제히 표시하고 나섰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아랍계 22개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은 9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회의를 열고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선언을 규탄했다. 아랍연맹 외무장관들은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이 중재자 역할로부터 스스로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비난했다. 이날 회의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등 아랍 주요국을 비롯해 지난 6월 단교 당한 카타르의 외무장관도 참석했다.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트위터에 “(트럼프가) 중동을 불안하게 하고 (미국이) 전쟁을 시작하려 한다”고 비난했고, 이라크 무장단체 '하라카트 헤즈볼라 알누자바'는 성명을 내고 “이라크에 주둔하는 미군을 공격할 이유가 생겼다”며 무력 행동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중동 국가 중 미국의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국왕도 “(트럼프의 예루살렘 선언은) 세계의 강경 무슬림들의 도발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도 미국 영사관 앞에서 “살인자 미국은 중동에서 떠나라”는 시위가 벌어졌고, 요르단 수도 암만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등지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는 시위가 산발적으로 이어졌다.
유럽 주요 5개국도 8일(현지시간) 공동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선언을 용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유엔 주재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웨덴 대사들은 이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회의 후 공동성명 발표를 통해 “우리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고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는 미국의 입장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성명에서 “트럼프의 이번 선언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부합하지 않고, 중동 지역 평화에도 도움이 안 된다”며, “예루살렘의 지위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협상으로 결정돼야 한다. 예루살렘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의 수도여야 한다는 것이 유럽연합(EU) 회원국의 변함없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트럼프의 결정에 대해 "암흑의 시기로 돌려놓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사태로 이달 말로 예정됐던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반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간 만남도 취소됐다.
9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야드 알말리키 팔레스타인 외무장관은 카이로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협상을 중재할 자격이 없다”며, “아랍국들과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중재자를 찾겠다”고 밝혔다.
사에브 에레카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사무총장 겸 평화협상 대표도 미국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는 결정을 철회할 때까지 미국과 대화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그동안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돈독히 유지하면서도 아랍권을 의식해 예루살렘에 대해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 1995년 유대계 로비가 먹혀들어가며 미 의회에서 예루살렘으로 대사관을 옮겨야 한다는 법안이 통과됐지만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이 법안을 6개월마다 유예하며 실행을 유보해왔다.
박정진 기자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