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중국의 교과서에서는 1950년 한국전쟁에서 북한이 중국 정부에 파병을 요청해 참전한 것이며 ‘미국의 위협에서 북한과 중국을 보호하기 위한 전쟁’으로 표현하고 있다. 중국 인민교육출판사 중2년 ‘중국역사’ 하권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중국정부에 파병 원조를 요청했다. 조선을 원조하고 국가를 보위하기 위해 1950년 10월 펑더화이(彭德懷)를 사령관으로 한 중국인민지원군이 조선전선으로 출동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한국전쟁은 1950년에 일어났지만 사실 중국공산당은 그 전에 벌써 북한 사무에 관여하기 시작했고 1949년 7월부터 1950년 4월 사이에 남침계획을 세운 김일성의 요구에 따라 북한에 중국 조선족들로 구성된 총 69,200명의 156사, 164사, 166사 및 기타 두 개 단을 파견했다. 조선족 군인들은 북한인민군의 46.5%를 차지했으며 모두 국공전쟁에 참여했던 정예부대로서 인민군이 남한을 기습해 승전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1949년 말, 스탈린은 모스크바에 온 마오쩌둥에게 김일성의 작전 계획을 알려주면서 한국전쟁에 출병을 요구했다. 전반 한국전쟁 기간에 중국은 미국과 언제 어디서 어떻게 협상해야 하는지, 심지어 작은 부대를 움직이는데도 모두 스탈린의 명령을 들어야 했다. 소련의 지원으로 정권탈취에 성공한 중공은 소련에 대한 충성심이 드높았다. 따라서 중공 독립적으로 미국에 대항하고 북한을 보위한다는 발상을 한 것이 아니었다.
1950년 8월 2일에 이르러 중국과 북한 국경에는 소련의 뜻대로 이미 55만 명 중국지원군이 집결해 있었고 2개월 후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펑더화이(彭德懷)가 ‘중국인민지원군’을 이끌고 정식 북한에 진입해 참전했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1950년 9월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할 때, 워싱턴 당국은 압록강 대교와 북한 경내 모든 발전소를 폭격하지 말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중국 지원군 56개 정규 부대가 순조롭게 압록강을 건널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북한 경내 발전소는 중국 동북지구와 시베리아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었다.
전반 한국전쟁 기간에 모든 공중전은 북한 상공에서 진행되었고 유엔군은 압록강 상공을 지나 중국 경내에 침입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중공 국무원 저우언라이 총리는 전쟁폭발 사흘 후, 미국 제7함대가 대만해협에 주둔한 사건을 빌어 성명을 발표, “미국과 이승만이 한국전쟁을 발동했다”, “미국은 북한을 발판으로 중국을 노리고 있다”, “미국은 한반도와 대만을 이용, 남북 전술로 중국을 포위하고 있다”라고 중국 국내에 거짓말을 퍼뜨렸다.
중공이 몇십 년 동안 역사를 왜곡해 국민들을 세뇌시킨 결과 미국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쟁 기념비를 참관하는 중국인들은 지금도 하나같이 “침략자 미국은 수치스러운 전쟁에서 패전하고도 기념비를 세우는가?”라고 말한다.
한국전쟁에서 중공은 ‘인해전술’을 시행해 총 130만 지원군을 한반도에 투입했다. 당시 서방 여론들은 중공이 아무런 경험이 없는 농민들까지 전쟁에 내몰았다고 비난했다.
유엔의 집계 수치에 따르면 중국군의 사상자와 실종자는 총 90만 명에 달하지만 ‘중국인민해방군전사(全史)’에는 36만 6천 여 명이 감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군 희생자수는 29,550명 밖에 되지 않으며 교전 쌍방의 총 사상자 수치를 비교해 보아도 미국-남한 측이 58만 명, 중국-북한 측이 160만 명이어서 선명한 차이를 보인다.
또 포로 교환 정황을 보면 미국은 북한 인민군 11만 2천명, 중국 지원군 2만 8백 명의 포로를 손에 쥐고 있었으나 중국과 북한 측에는 미국군 포로 4,417명, 한국군 포로 7,142명밖에 없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후에도 중국으로 돌아간 포로는 7,110명밖에 안 되었으며 나머지 1만 4천 명이 공산당을 반대해 대만으로 가면서 중공 이미지에 ‘먹칠’했다. 중국으로 돌아간 포로들은 귀국 후 철저한 조사를 받고 서로 배신자를 적발하게 했으며 전부 군대와 당에서 쫓아내고 농촌에 보냈다. 게다가 문화대혁명 기간에 그들은 또 투쟁을 받아 비참한 인생을 살아야 했다.
한국 전쟁은 중공 폭정의 시작이었다. 건국 후, 중국인민들은 정력을 집중해 경제를 발전시킬 것을 중공에 기대했으나 마오쩌둥은 인민들의 질고를 뒤로 한 채 백만이 넘는 국민들을 전쟁터로 내몰아 스탈린과 김일성을 대신해 총탄을 막게 했고 국고를 다 털어 전쟁에 날려 버림으로써 항일전쟁과 내전으로 찌든 국민들의 어려운 생활을 가중시켰다.
한국전쟁은 중국인민들의 선혈로 북한 김씨 부자에게 독재왕조를 세워주어 오늘날까지 북한 국민들이 도탄속에서 허덕이게 만들었고, 마오쩌둥은 한국전쟁을 통해 중국 야전군 사령관들을 없앰으로써 군사권을 모두 자기 손에 쥐고 더욱 잔인무도하게 폭정을 행할 수 있었다.
對중국 단파방송 - SOH 희망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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