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위안춘(何遠村ㆍ중화권 시사평론가)
[SOH] 최근 영국의 <더 타임즈>와 한 미국 의원이 ‘베이징올림픽’과 ‘베를린올림픽’을 함께 거론한 후 중공 당국의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그렇다면 양자 간에 어떤 유사성과 차이가 있을까? 이 글에서는 베를린올림픽이 치러지기 전후 독일의 상황을 살펴보고 양자 간의 유사성과 차이점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1931년 5월 베를린은 바르셀로나를 물리치고 제 11회 올림픽 개최권을 따냈다. 당시 나치는 아직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기 전이며 이때까지 독일은 민주국가였다. 게다가 독일은 원래 1916년 올림픽 개최권을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제 1차 세계대전 때문에 올림픽을 치르지 못한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1936년 올림픽 개최권을 베를린에 준 것은 이에 대한 보상이기도 했다.
이는 2001년 중공이 ‘6.4 천안문학살’과 파룬궁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이란 인권논쟁 중에 인권을 개선하기로 약속하고 ‘베이징 올림픽’ 개최권을 획득한 상황과는 판이하게 다른 점이다.
1933년 나치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고 히틀러가 독일의 국가원수가 됐다. 원래 나치라는 말은 국가사회주의(National Sozialismus)의 준말이다. 나치는 반민주적인 정권이었기 때문에 히틀러는 아주 빠른 시간내에 독일을 민주체제에서 독재국가로 변모시켰다. 나치 경찰은 수천 명에 달하는 반체제 인사를 잡아갔으며 정식 재판도 거치지 않고 강제수용소에 사람을 수용했다. 동시에 인종청소를 실시해 ‘아리안(Aryan) 인종 우월론’을 주장하면서 유대인(이중에는 먼 조상이 유대인인 경우도 포함)과 집시들을 독일에서 몰아냈다.
원래 히틀러는 체육에 대해 그리 큰 흥미가 없었고 또 혹여 올림픽으로 인해 독일에 국제적인 관심이 집중되면서 나치의 종족정책이 폭로될까 두려워했다. 때문에 히틀러는 이전 정부가 신청한 ‘베를린올림픽’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히틀러의 선전부 장관이자 2차 대전 중 유명했던 거짓 선전의 대가 괴벨이 히틀러를 설득했다. 독일은 올림픽을 선전도구로 삼아 ‘아리안 인종 우월론’을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히틀러는 올림픽에 대한 열정을 일으켜 베를린올림픽을 지원하는데 당시 돈으로 2천만 마르크(당시 돈으로 800만 달러에 해당)에 달하는 거액을 투자해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주경기장을 건립했으며 이전의 모든 올림픽을 능가하는 대규모 정치잔치를 열기로 했다. 당시 괴벨은 “독일체육의 유일한 임무는 바로 독일인의 성격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가리킨 독일인은 바로 인종청소를 끝낸 이후의 순수한 독일인종이라는 것이다.
체육선전물 중에서도 독일 예술가들은 아리안 인종의 발달된 근육과 영웅적인 힘을 표현하도록 요구받았다. 올림픽에 대한 나치의 선전열정은 심지어 선전기술에서도 큰 발전을 이룩했고 세계 최초로 TV 실황중계(당시 독일에 TV가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를 실현시켰다. 이리하여 올림픽은 히틀러와 나치가 자신들의 정치주장을 선전하는 큰 무대로 변질됐다.
나치에게는 다음과 같은 격언이 있다.
“선전은 우리가 정권을 탈취할 수 있게 돕고 선전은 우리가 정권을 공고히 하게 도우며 선전은 우리가 전 세계를 획득할 수 있게 돕는다.”
이 점에 있어서 거짓 선전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중공과 나치는 이심전심으로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나치의 반(反)유대인 행동은 전 세계인들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1933년 이후 사람들은 올림픽을 다른 곳에서 치러야 할지 여부에 대해 논쟁을 벌였고 베를린올림픽을 저지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져갔다. 많은 유대인 단체들이 곳곳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러다 올림픽이 개최되기 1년 전인 1935년, 당시 미국 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인 에버리 브런디지(Avery Brundage)가 직접 독일을 방문해 현장을 참관했다. 하지만 엄밀하게 통제된 상태 하에서 단기간의 참관에 불과했고 나치 역시 올림픽은 순수한 체육대회로 올림픽을 이용해 정치적인 관점을 선전하지 않겠노라고 그를 설득했다. 이에 브런디지는 순진하게 이 말을 믿고 자신이 본 것이 진실한 독일이라고 여기고는 올림픽을 저지하려던 원래 생각을 바꿨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여전히 의견이 크게 갈렸다. 당시 미국 아마추어 운동협회 회장이었던 예레미아 매호니(Jeremiah Mahoney)는 나치의 유대인 차별이 종족과 신앙을 차별하지 않는 올림픽 정신에 위배된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브런디지는 ‘올림픽이 정치와 무관하다’고 인정하면서 미국 선수들에게 ‘유대인과 나치의 다툼’에 끼어들지 말라고 말했다.
당시 미국의 IOC 위원이었던 어니스트 리 얀케(Ernest Lee Jahncke)는 베를린올림픽 개최를 강력히 반대하다가 IOC로부터 제명당했다. 그는 100여년이 넘는 IOC 역사상 유일하게 제명된 위원이 됐고 그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인물이 바로 브런디지였다.
결국 미국은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까지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다. ‘베를린올림픽’에 대한 미국의 이런 태도는 많은 나라들에 영향을 끼쳐 모두 49개 국가에서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다. 이는 올림픽 역사상 초유의 일로서 베를린 올림픽은 공전(空前)의 성황을 기록했다.
1936년 8월 1일 히틀러는 올림픽 개막식 행사를 주관했다. 이때 ‘베를린올림픽’에서 전에 없던 새로운 의식을 채용했는데 바로 올림픽 성화를 봉송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단지 그리스에서 성화를 채화하기만 했지 사람들을 통해 릴레이로 성화를 전달하진 않았다.
3천여 명이 동원돼 21일을 운반한 베를린 성화는 올림픽 개막식 당일 현장에 있던 히틀러에게 전달됐고 성화의 ‘신성한 빛’은 세계인들에게 나치의 반인류 음모를 희석시켰다. 나치 독일의 선전기계는 이 성화 전달식 장면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히틀러의 어용 배우 레니 리펜스탈(Leni Riefenstahl)이 1938년 발간한 ‘올림피아’라는 다큐멘터리의 가장 유명한 장면이 바로 그리스에서 성화봉송 주자가 에게해(海)의 황혼을 배경으로 성화를 들고 천천히 달리는 것이다. 히틀러의 기만적인 선전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이 올림픽에서 독일은 가장 많은 금메달을 획득했고 히틀러와 나치를 크게 부각시켰다.
1936년 8월 축제의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베를린에는 도처에 올림픽 깃발과 나치 표지가 나부꼈다. 거의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공공장소에 있던 유대인 반대 표어들이 잠시 내려진 것임을 까마득히 몰랐다. 관광객들은 또한 베를린에 거주하던 집시들이 내무부에서 발표한 ‘정화’계획에 따라 대회기간에 시내에서 쫓겨나 교외에 있는 한 수용소에 임시로 감금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관광객들이 더욱 알 수 없었던 것은 괴벨이 장악한 선전부에서 언론 보도에 대해 대량의 지시와 엄격한 요구, 심사를 통해 나치의 반(反)인류범죄가 절대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했다는 것이다.
중공 집권자들이 선전하는 경제발전과 마찬가지로 히틀러도 독일의 ‘경제 기적’을 만들어 냈다. 1929년부터 1933년까지 전 세계적인 대공황 속에 독일의 경제도 아주 곤란했다(이에 비하면 중공은 전 세계적인 경제호황의 좋은 시기를 탔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이후 나치의 경제정책으로 독일의 실업률은 30%에서 거의 0%로 떨어졌고 세계 경제에 대한 독일의 의존도가 크게 낮아졌으며 임금 및 물가도 안정됐다. 오늘날 유명한 ‘폭스바겐(Volkswagen)’이 등장한 것이 바로 이 시기로 히틀러가 일반 출퇴근 근로자들이 탈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차량이 바로 폭스바겐이었다. 그러나 히틀러의 종족주의 정책은 끝내 독일의 앞길을 파멸로 이끌었다.
히틀러가 원했던 것은 전 세계였고 그는 베를린을 올림픽 개최지로 만들려고 했다. 강력한 경제력과 전례 없는 선전을 통해 히틀러는 올림픽을 성공시켰다. 당시 미국 기자였던 쉬어러(Shirer)는 자신이 쓴 ‘쉬어러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전례 없는 굉장한 규모의 운동장면은 선수들로 하여금 잊을 수 없게 했고, 찬란하고 화려한 도시는 방문객들, 특히 대 기업가들로 하여금 흥분을 감출 수 없게 했다.”
그렇다, 전 세계는 바로 이렇게 마비됐고 나치의 인종 학살을 적시에 저지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 히틀러가 유럽 전역을 전쟁터로 만들었을 때는 모든 것이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바로 이런 과거의 교훈을 거울삼아 사람들은 ‘베이징올림픽’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중공의 ‘베이징올림픽’ 선전공세는 체육과는 무관한 정치적 동기와 민중에 대한 인권박해에 이르기까지 예전의 나치 독일과 아주 흡사하기 때문이다.
올림픽을 이용해 전 세계에 자기 나라를 선전하는 것은 원래 당연한 것으로 문제될 것 없다. 하지만 문제는 나치와 중공은 체육과 무관한 정치적 동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중공은 비록 ‘중화민족 우월론’을 선전하려는 것은 아니겠지만, 독일에서 전해진 공산유령(共産幽靈)과 나치의 독재전제 정권이 중국에 가장 적합하다고 선전하면서 중공을 위해 미화하고 집권 합법성을 찾으려는 것이다. 중공은 지난 30년 동안의 경제개발을 통해 자원을 낭비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며, 토지를 헐값에 양도하고, 값싼 노동력, 인권 및 신앙을 박해해 왔으며 빈부격차를 심화시켰다. 또한 전 사회를 부패시켰고 성을 문란하게 했으며 도덕의 붕괴를 대가로 표면적인 번영을 바꿔와 중공이 살아 숨쉴 기회를 제공했다.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은 중공의 집권 ‘합법성’을 전 세계에 선전하고 자신을 미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상 높이기 프로젝트’가 되었다.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중공은 이번 올림픽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올림픽으로 치르기 위해 그 어떤 희생도 아끼지 않고 있다. 예전에 히틀러가 그랬던 것처럼 전 세계 모든 정계 인사들이 떠받드는 올림픽을 치르려는 것이다. 중공은 주택문제, 의료문제, 취학문제, 민생문제 등이 겹겹이 쌓인 난제들은 물론이고, 수없이 발생하는 민중들의 집단항쟁, 도처에 잠복한 사회위기, 중공에게 박해 받은 각종 단체들의 저항, 정치범, 지하교회, 인권변호사, 파룬궁 수련자, 티베트 승려, 토지를 빼앗긴 농민, 집을 빼앗긴 철거민 등의 반발에 직면해 있다. 이뿐만 아니라 파룬궁 수련자의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해 폭리를 취하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사악한 죄악을 저지르고 있다. 그럼에도 공산당은 말한다. 반드시 “전 사회적으로 열렬한 올림픽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며” 반드시 “올림픽을 모든 정치임무를 압도하는 지위에 놓아야 한다”고.
중공 내부에서 발표한 문건에 따르면 11부류 43종의 사람들은 올림픽과 관련된 활동에 참가할 수 없다고 한다. 이 중에는 신앙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중국 민중들을 포함한다. 또 65개 항목의 올림픽 입법요구를 반포해 올림픽 건설에 참여한 백만 민공(民工)을 고향으로 ‘되돌려 보낼 것’을 요구하고, 유랑하는 걸인들에 대한 강제 ‘구조(救助)’를 실시하며, 폐품 수집상이나 소규모 상점 등을 ‘정화’라는 명목으로 베이징에서 강제로 내몰았다. 베이징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현(縣)급 이상의 증명이 있어야 한다. 이런 소위 도시 ‘정화(淨化)’는 히틀러조차 따르지 못할 정도이다.
대기오염 문제, 식품안전 문제, 에티켓 문제, 언론자유 문제, 인터넷차단 문제 등은 모두 중공이 직면한 거대한 도전이다. 그러나 중국은 정부가 인민을 대표한다는 소위 ‘인민정부’이기 때문에 정부는 반드시 ‘공산당의 지도를 견지’할 것이며 이를 일러 공산당의 이익이 모든 것을 초월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번 올림픽은 중국 인민의 올림픽이 아니며 중국 공산당의 올림픽이다. 이점에서 본다면 나치의 ‘베를린올림픽’과 같다.
올림픽 기간에 나치는 어쩔 수 없이 행동을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중공은 그야말로 ‘역풍을 무릅쓰면서’ 외부에 진상이 알려지지 않도록 발악하고 있다. 중공은 ‘올림픽’을 구실로 인권수호 인사들 및 파룬궁수련자들에 대한 대규모 체포와 판결에 나섰다.
많은 서양 국가들이 비록 이에 대한 ‘관심을 표시’하긴 하지만 경제적 이익 때문에 강력하게 나서지 못하고 있다. 중국을 한 마리 젖소로 보자면 중공은 서양 국가들에게 목숨을 걸고 젖을 짜내고 있다. 단지 현재의 중국 기업을 병탄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중국시장까지도 점령하게 했으니 이는 경제적인 식민지나 마찬가지이다. 경제적 이익 때문에 서양 국가들은 중국이란 시장에서 손을 떼려 하지 않는데 중공은 이런 서양의 심리를 꿰뚫고는 문을 닫아걸고 중국 백성들을 탄압하고 있다.
이는 ‘베를린올림픽’과 ‘베이징올림픽’이 많은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가장 크게 다른 점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정의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져감에 따라 갈수록 많은 중국인들과 서양 민중들이 용감하게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강대해보여도 속은 텅빈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중공은 비록 좋은 일을 할 능력은 없지만 중국인을 박해하는 운동에서는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올림픽을 진심으로 환호할 때 중공의 어두운 감옥에서는 양심수들이 고통스런 신음 속에 고문을 받고 있을지 모른다. 서방 정계인사들이 개막식에서 중공의 체면을 살려주고 중공의 얼굴에 금칠을 할 때 중공은 공산당 독재전제를 영원히 지속할 결심을 내릴 것이다. 올림픽이 끝난 후 사람들이 그 전례 없는 규모에 감탄할 때 중공은 구실을 찾아 더 가혹하게 선량한 민중들을 박해하고 탄압을 끝까지 진행하려 할 것이다.
‘베를린올림픽’의 교훈에 직면해 우리는 중공에 대해 “올림픽과 반(反) 인류범죄가 중국에서 동시에 진행되게 할 수는 없다”고 외쳐야 한다. 베이징올림픽은 마땅히 진정하게 전 중국인들의 올림픽이 되어야 하며 세계와 함께 인류의 자유와 도덕 가치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올림픽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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