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현지인에게는 돌로 이뤄진 경사지로 불리지만 사실상 이것은 댐의 유적지이다. 이것은 대우치수(大禹治水)보다 무려 일 천년이나 앞선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8년 전 항조우(杭州)시 교외의 양저(良渚)유적지에서 발견되었는데, 이 지역에서는 앞서 대량의 옥, 예기, 거대 건축물의 근거지들도 발굴된 바 있어 사람들을 매우 놀라게 했다.
전문가의 현지 조사 결과, 이것은 항조우(杭州)시 교외의 양저(良渚)고성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전설의 대우치수(大禹治水)보다 1000년 더 앞서 건설되었기 때문에 현재까지 4700~51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중국 최초의 대형 수리 시설 공정으로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댐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는 이 수리 시설과 양저(良渚) 고성을 보호 대상 문물로 등재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면 선사시대였던 신석기 시대 후기에 양저인(良渚人)은 어떻게 이러한 거대한 수리 시설을 만들었을까? 또 이것은 어떤 용도로 사용됐을까? 양저 고성(良渚 古城)은 절강성(浙江省) 항조우시(杭州市) 위항구(余杭区) 핑야오(瓶窑) 읍내에 있다. 이번에 확인된 양저 고성의 수리시설은 양저 고성의 북쪽과 서쪽에 있으며 총 11개의 댐과 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댐과 둑들은 형태와 위치가 서로 달라 긴 댐과 두 산을 연결하는 짧은 댐으로 분류 가능하며, 그 중의 짧은 댐은 산골짜기에 세워진 높은 둑과 평원 언덕을 연결하는 낮은 둑으로 또 다시 분류할 수 있다.

90년대 초 고고학자들은 일찍이 이곳에서 가장 긴 댐이었던 당산유적(塘山遗址)을 발견했다. 이것은 고성 북쪽의 당산유적(塘山遗址)과 함께 완벽한 수리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고고학 계의 당시 발견으로 두장댐(都江堰)은 “현재까지 세계의 생태공학이 현존하는 곳”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동시에 선사시대 고고학 연구의 새로운 영역을 열어 주었다. 이번 발견은 또한 양저 사회가 조기의 국가 형태를 갖추었으며, 같은 시대의 세계 문명과 필적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수리시설로 양저 고성이 내부에서 외부까지 궁성, 왕성, 외곽성과 주변의 수리시설 등 완벽한 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이 확인됐는데, 건조 시 사용된 기술과 규모가 놀라운 수준을 보여 준다. 한 전문가는 양저 고성의 관리 구조와 사회의 복잡화 정도는 중요한 관찰 시각을 개척했을 것이라 평가했다.
5000년 전의 사람들은 왜 수리시설 건설에 공을 들인 것일까? 고고학자들은 그 이유로 양저 고성만이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들고 있다. 높고 낮은 양극의 댐을 이용해 물을 산골짜기와 낮은 땅에 모아두어 홍수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고고학자와 수리시설 전문가는 오래 전 고대 시대에 오늘날의 기술에 전혀 뒤지지 않는 수준으로 이 같은 수리시설을 만들었다는 것에 매우 놀라워했다. 이는 양저 사회의 뛰어난 계획, 조직 및 관리 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발견으로 중국 수리시설의 역사는 대우치수(大禹治水)보다도 천 년이나 앞선 양저문명(良渚文明 )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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